1. 내가 알바를 시작한 이유
우리 집은 객관적으로 돈이 부족한 집이 아니었다. 엄마 아빠도 내가 알바할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거나 새로운 경험을 하길 바라셨다. 하지만 우리 집은 4자매였고, 셋째는 예체능을 희망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집보다 최소 3배는 많은 돈이 필요했다.
나는 금전적으로 부모님께 과도하게 의존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대학교에 올라가자마자 쿠팡 알바도 해보고, 대창집에서도 일하면서 손을 데기도 했고, 최근엔 하루긴 하지만 화장품 공장 알바도 시도해봤다. 그런데 이번 년도에 약 한 달간 유럽 여행을 계획하면서, 돈을 더 모으고 싶었다. 그래서 총 3곳에 알바를 지원하고 면접을 봤다.
물론 단순히 금전적인 이유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나는 평소에 활발한 성격이 아니고, 센스 있는 언변도 없고, 사회성이 좋다고 할 수 없었다. 이런 점을 개선하고 싶었고, 알바를 통해 무언가를 독립적으로 해낼 힘을 기르는 중요한 단계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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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세 군데의 알바 면접, 좋은 소식
어제 나는 총 세 곳에서 면접을 봤다. 그중 하나는 옷가게였는데, 손님들이 오면 응대하고 가끔 옷을 추천해주는 일이었다. 그리고 면접을 본 지 단 2시간 만에 합격 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그날, 엄마 아빠는 나만 치킨집으로 데려갔다. 나는 걸어가면서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예상했다. 부모님이 나에게 무슨 말을 할지, 어떻게 설득하려 할지 고민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모님의 입장도 이해가 됐다. 없는 것도 내어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인데, 그 딸이 굳이 알바를 해서 소중한 시간을 버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치킨집에 도착한 나는 치킨을 먹을 생각에 입맛을 다시면서 부모님을 기다렸다. 하지만 예상대로, 아빠는 내가 치킨을 한 조각 집어 들자마자 바로 이야기를 꺼냈다.
3. 아빠는 너희를 누구보다 잘알아
아빠는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우리 4자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너희 네 명을 잘 알아. 같은 듯하면서도 다 다른 성격이라, 각자에게 어떻게 말해야 이야기가 잘 통하는지도 알고 있어.”
그러면서 예시를 들었다. 언니는 이과 성향이라, 퍼센트로 따졌을 때 무엇이 더 효율적인지, 정확한 근거를 들어 이야기해야 이해가 잘 됐고, 동생은 옳고 그름이 확실해야 이야기가 잘 통했다. 그렇게 생각했을땨 나는 철학적이고, 고집이 가장 세다고 했다. 어떤 결정이 더 합리적인지는 모든 이야기를 들어보고 생각해보지만 결국 난 내가 내린 결정을 지키고자 하는 성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아빠는 알바와 유럽 여행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너에게 유럽 여행 비행기값, 여행할 때 드는 모든 비용을 다 포함해서 100만 원을 더 줄게. 그러니 알바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하지만 만약 그 알바가 돈이 아닌 다른 소중한 가치를 준다면 말리지 않겠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도 네가 굳건하다면, 우리는 끝까지 말릴 수 없겠지. 다만, 넌 몸을 쓰지 말고 머리를 써야 돼.”
그러면서 덧붙였다.
“쿠팡이나 공장 하루 알바는 네가 돈 버는 게 얼마나 힘든지를 알려주고자 아무 말 안 했어. 하지만 장기적으로 가는 건 말리고 싶어.”
엄마와 아빠는 너무나도 가난했던 시절을 보냈기에, 하고 싶던 일들을 포기해야 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일하면서 다시 한번 느낀 건, “사람은 하고 싶은 걸 해야 한다.” 였다.
“우리가 느꼈던 아픔을 너희 네 자매에게는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아. 지금 너의 청춘은 너무 소중한데, 우리가 이렇게까지 도와주겠다는데, 왜 굳이 어려운 길을 가려는 거야?”
이게 아빠의 핵심적인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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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실패 또한 한페이지가 될 것이기에
부모님의 말을 듣고 나는 200% 공감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더더욱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우리 부모님은 사업을 하시는데, 최근 들어 경제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직격타를 맞았다. 아빠가 새롭게 시도한 사업도 좋지 않은 결과를 냈다는 걸 알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언니(독립 안 함), 동생(예체능 준비 중), 막내(이제 중학생)가 부모님에게 과도하게 의존하는 상태에서 나까지 부모님의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알바를 하겠다고 결심한 게 첫 번째 이유였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알바를 하면서 사회성과 언변을 기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경험들이 훗날 내 직업에 큰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했다.
세 번째 이유로는, 알바 안 하는 친구들을 찾기가 더 어려운 현실도 있었다. 게다가 나는 학교를 안 가는 날도 있으니, 돈을 벌 수 있는 좋은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할 때 감정적이면 안 됐는데,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고 부모님 앞에서는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눈물이 나왔다.
나는 겨우겨우 한 마디씩 내뱉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빠가 “이 시간들로 네가 이번에 이루려 했던 일들을 실패한다면 어떡할 거냐?” 라고 물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것 또한 나라는 책의 한 페이지가 될 거야. 나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할 거고, 실패까지도 모두 나일 거야.”
5. 또 하나의 새로운 결심, 새로운 여정
내 말을 들은 엄마 아빠는 결국 나를 말리는 걸 포기했다. 나는 엄마 아빠에게 약속했다. 알바를 하면서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가치있게 여기고 알바로 인해 다른 것들을 절대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치킨집을 나오며 다행히 해피엔딩으로 나온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눈물젖은 소매로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며 어깨동무를 했다.
오늘 하루는 참 길었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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